‘어린이’라는 말은 1920년대 들어 방정환이 정착시키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어요
방정환은 아동문학가로서 우리나라 첫 아동 잡지 『어린이』를 발간하고 어린이 단체도 만들었지요.
동화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것으로도 유명해서 지방마다 돌아다니며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었대요.
그가 어린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천도교의 영향이라고 해요.
천도교는 ‘어린이’를 새롭게 정의하고 어린이운동을 전개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어요.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천도교의 사상 속에서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요구가 가능해졌지요.
천도교에서는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므로 아이를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방정환은 천도교를 믿는 사람이었고, 이런 생각에 뜻을 같이했던 거에요.
방정환이 생각한 ‘어린이’는 티 없이 맑고 순수하며 마음껏 뛰놀고 걱정 없이 지내는 그런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암울한 삶을 살아가던 시기였지요.
그때 어린이들의 실제 모습은 방정환이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어요.
그때에는 의무교육이 시행되지도 않았고 교육을 받는 어린이도 많지 많았어요.
대개의 어린이들은 농사일을 하거나 도시로 나가 공장에서 일을 했지요.
비록 현실이 가혹할지라도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어린이날이 만들어졌대요.
천도교소년회는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했지요.
1923년 5월 1일 첫 어린이날 행사가 천도교당에서 열렸어. 기념식 뒤 200명의 소년들이 경성 시내를 4구역으로 나누어 집집마다 아래와 같은 선언문 12만 장을 배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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